전시 리뷰_ 유기체로의 변주

 

김연주_ 문화공간 양 기획자

김희주는 주로 두 가지 기법을 사용해 작품을 만든다. 바로 전해주조와 칠보다. 전해주조 기법으로는 형태를 만든다. 이 기법은 금속을 잘라서 붙이거나, 구부리거나, 두드리는 방법과는 달리 섬세하고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칠보는 금속 위에 안료를 놓고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는 기법으로 금속 위에 색을 입히기 위해 사용한다. 전해주조와 칠보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가공하기 어려운 금속의 물리적 속성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전해주조로는 복잡한 형태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금속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 칠보는 금속 본연의 색과 질감을 가린다. 따라서 이 두 기법은 작가의 초기 작품에서 보여준 자연의 형태를 만들기에 적합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예에는 식물의 형태에서 따온 문양이 널리 사용되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는 식물의 덩굴 모양에서 유래한 당초문이 공예품에 즐겨 사용되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서양에서 유행했던 아르누보 양식은 식물의 곡선을 디자인 구성요소로 사용하여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이룩했다. 따라서 식물의 형태에 관심을 두었다는 측면에서 보면 김희주의 작품은 크게 주목할 부분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식물의 형태를 문양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거친 질감의 입체로 재현함으로써 식물의 생명력을 담은 장신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지닌다. 첫 번째 개인전 《다섯 번째 계절》에서 선보인 작품에서 금속의 특징인 매끈함과 광택은 찾아볼 수 없다. 식물을 표현한 거친 질감 아래로 금속성은 감추어졌다. 금속성이 은폐되자 문양으로 박제되어 생명력을 빼앗겼던 식물은 거친 질감 위로 무한한 생명력을 가지고 되살아났다.

 

 

최근 몇 년 사이 김희주의 작품에 변화가 일어났다. 작품의 형태가 점차 식물의 형태에서 벗어나 추상화되었다. 그녀의 두 번째 개인전 《유니버셀UniverShell》은 이러한 변화를 잘 정리해서 보여준 전시다. 추상으로의 변화는 장신구를 만드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였다. 작가는 장신구가 사람의 몸에 착용하는 물건이라는 점에 더욱 주목하기 시작했다. 목걸이를 착용했을 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기존의 거친 질감을 부드럽게 바꾸고, 몸의 곡선에 따라 목걸이가 몸에 걸쳐질 수 있도록 작품을 유기적 구조로 만들었다. 초기 작품이 독립된 대상 하나하나가 서로 결합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면, 최근 작품은 부분과 부분이 연결되어 하나가 되는 유기체의 형태를 지닌다. 유기체로의 변화는 목걸이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유니버셀》에 전시된 목걸이는 깔때기 모양의 부분이 여러 개 연결되어 완성된다. 작가는 오래전부터 깔때기 모양에 흥미가 있었다. 2004년 다양한 종류의 깔때기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깔때기의 기원, 기능, 상징적 의미 등을 연구했다. 이러한 수집과 연구는 작품에 직접 영향을 주어 2005년부터 작품으로 깔때기를 제작했다. 깔때기 그 자체에서 점차 깔때기 모양과 흡사한 식물의 모양에 눈을 돌리면서 2010년부터 식물의 형태를 재현한 장신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꽃이나 열매 모양으로 구체화되었던 형태는 이번 전시에서 다시 깔때기의 모양으로 환원된다. 즉 자연의 재현에서 추상 형태로 바뀌었다. 형태의 추상화는 색채의 변화를 이끌었다. 식물 형태의 작품에서는 갈색과 흑색 위주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색채가 화려해졌다. 화려한 색은 몇몇 과정을 거쳐 얻어진다. 우선 여러 색의 안료를 금속 위에 층층이 쌓아 굽는다. 안료가 녹으면서 금속 위에 색의 층이 생긴다. 구워진 표현을 사포로 다양한 깊이로 벗겨낸다. 벗겨낸 정도에 따라 다양한 색이 나타난다. 이렇게 얻어진 색채는 자연의 원초적 생명력을 응축해 놓은 듯 보인다.

《유니버셀》에 전시된 브로치의 경우는 순수한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조각과 같은 성격이 강하다는 측면에서 초기 작품과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즉 가슴에 달렸지 않고 좌대 위에 놓인 브로치는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하나의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목걸이와 마찬가지로 초기 작품보다 열매 등의 형태가 단순화되거나 원이나 정육면체 등으로 추상화되었다. 또한, 여러 조형 요소를 결합해 나가는 구성원리가 강조되어 유기적 형태를 띤다. 초기 작품에서는 작품 자체의 예술성이 중요했다. 그러나 작가는 점차 사람과 작품의 관계로 관심을 확장해갔다. 장신구는 예술 작품 중에서 작품을 소유한 사람의 몸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장신구를 착용한 사람의 신체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순수예술 작품과 달리 사람들은 장신구를 자신이 바라보기 위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자신과 함께 보여주기 위해 소유한다. 또한, 장신구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다른 예술작품과 달리 장신구 자체만을 감상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보통 장신구와 그것을 착용한 사람을 하나로 보고 평가한다. 따라서 장신구를 착용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미적 대상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장신구와 함께 하나의 작품이 된다. 장신구를 착용한 사람, 장신구, 이 둘을 바라보는 사람 사이에 이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생긴다. 김희주는 이러한 장신구만의 속성을 깊이 있게 이해했다. 따라서 목걸이가 사람의 목에 걸렸을 때 작품으로 완성되고, 사람이 목걸이를 걸었을 때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내 몸의 일부처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작가는 깔때기 모양의 각 부분을 서로 연결한 유기적 형태로 작품을 만들었다. 자연의 재현에서 추상으로 변화, 이로 인한 유기적 형태의 탄생은 필연이다. 장신구 작가로서 가장 공예다운 작품을 만들고자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으로서의 예술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장신구의 기능성을 잘 살렸다.

작품의 유기적 형태와 화려한 색채는 생명력의 재현이 아닌 생명력 그 자체다. 작품의 강한 생명력은 작가의 강한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김희주는 공예와 장신구의 본질을 계속 깊이 있게 탐구해 나갈 것이기에 앞으로 이 유기체는 계속 변주해 갈 것이다. 앞으로 이 작품들이 어떻게 자랄지 궁금하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녀의 작업은 아마 넘치는 생명력으로 장신구와 우리의 세계를 더욱 넓혀나갈 것이다.